Teazen 자스민 차
사실 우리 집에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4000~5000원대의 저렴하고 맛있는 티즌 티백이 많다.
차를 그렇게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고, 기왕 마시는 거 분위기 있게 먹고 싶다는 일념으로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찻잔을 빌려 차를 우리기로 했다.
이것을 다짐하고 티백을 넣은 시간이 9시 정도였다.
참고로 이 글은 오후 1시 40분에 적히고 있다.
저 영롱한 색을 띄고 있는 사진의 자스민 차는 놀랍게도 1시간 우려진 상태의 차이다.
당연히 식었고, 당연히 쓴 향이 올라왔고, 보정빨이 잘 받아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누룽지 같은 색을 띄었었다. 차 끓여놓고 고기 좀 굽는다고 방치한 게 화근이었다. 다 먹고 설거지하고 소파에 누워 해리포터가 트리위저드에 끌려가는 것까지 구경한 뒤에야 차를 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.
하지만 재앙은 그 단계에서 멈추지 않았다. 1시간 우린 차의 상태가 생각보다 양호해 보이자 더 우리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.
먹느라 음식 사진을 남기지 못하는 성질머리상 사진은 남지 않았지만, 9시 가량부터 1시 30분까지 대략 4시간 30분 정도를 우려진 차를 마시는 건 인생에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한 것 같다. 그 맛에 대해서는 별로 서술하고 싶지 않다.
네 차에 독은 개나소나 탈 수 있다. 진정한 독은 게으름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.
그래도 한 번은 정상적으로 먹어야 시음기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했는데, 실수로 (말하자면 길다) 티백 컵 안에 미지근한 정수를 부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망한 차가 되었다. 멀쩡하게 차를 우리려는 시도조차 무산되었다.
삶은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조차 쉽지 않다. 차 한 잔의 여유라는 건 다 저세상 얘기다. 나는 차를 마시는 것조차 전쟁이다.
그래서 그냥 먹태포나 구워서 마요네즈에 찍어 먹기로 했다.
맛있는 먹태포 구이는 배신하지 않는다.
껍질도 잘라드세요!
짱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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